정겨운 할머니의 손등처럼 ‘펄’ 사이사이 패인 주름 위로 흐르는 실개천. 바다를 향해 내려오다 멈춘 낮은 산자락은 마치 두 팔로 포구를 감싸 안은 듯 아늑하다. 그 안에 점점이, 갯벌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
지난달 29일 찾은 충남 서산시 가로림만 서산 갯벌은 마치 자연이 만든 ‘가레산스이(枯山水·모래나 자갈, 바위로 자연 풍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일본식 정원)’ 같았다. 7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세계유산위는 전남 신안, 보성·순천 갯벌 등 2021년 세계자연유산에 오른 ‘한국의 갯벌’에 서산 갯벌, 전남 여수·고흥·무안갯벌을 확대 추가했다.
● 썰물 땐 교토 료안지 정원 보는 듯
가로림만은 육지와 섬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반 폐쇄성만. 때문에 직접 외해의 거센 파도가 밀려드는 다른 해안과 달리 바다가 잔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준다. 툭 터진 운동장이 아니라 동네 마당 같은 느낌이랄까.
마침 썰물 때라 광활한 갯벌 위로 작은 섬들이 쏙쏙 박혀있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교토 료안지(龍安寺) 정원을 보는 듯했다. 정원을 물 없이 바위와 모래로 표현하는 가레산스이 양식은 만물이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는 불교 선종 교리를 재해석한 것. 물이 차면 이탈리아 나폴리가 부럽지 않을 것 같다.
호젓함은 서산 갯벌이 주는 또 다른 장점.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지 얼마 안 된 탓인지 아직은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아직 식당 등 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사람 없는 곳이 드문 국내 여행지에서 번잡하지 않은 자연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 부산엔 ‘부캉이’, 서산엔 ‘점바기’
서산 갯벌은 멸종위기 야생생물(1급)이자 천연기념물(제331호)인 점박이물범의 서식지. 바다표범의 일종으로 국내에서는 서산 갯벌과 백령도에서만 볼 수 있는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온몸에 검은 점이 있어 ‘점박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대체로 3~11월 모래톱에서 쉬고 있거나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야생동물이라 방문했다고 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점바기’ 외에도 서산 갯벌은 국제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백로, 해양보호생물인 거머리말 등 800여 종의 생물이 서식해 2016년 국내 최초·최대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게다가 약 5000만 마리가 이동하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중심에 자리하고 있어 알락꼬리마도요, 저어새, 노랑발도요 등 다양한 조류들도 볼 수 있다.
3~11월 가로림만 내 중리어촌체험마을(041-665-9498)에서 운영하는 체험행사를 이용하면 갯벌의 진정한 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갯벌에서는 바지락 캐기, 마을에서는 감태 뜨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다만 계절마다 밀물·썰물 때가 차이가 있고 갯벌 입장이 안 되는 날도 있어 미리 확인은 필수. 중리어촌체험마을에 연락하면 체험 가능 날짜와 시간이 표시된 물때표를 보내준다. 홈페이지(cms.seantour.com/CN011/index.do)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토실토실한 바지락으로 만든 바지락칼국수, 대하, 낙지, 굴 등 먹거리는 근사한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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