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진료실에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흉기를 휘두른 50대 여성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19년 의료진 폭행 처벌을 강화한 이른바 ‘임세원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0년부터 시행됐지만, 여전히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 10명 중 1명은 최근 1년 새 폭행을 당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5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50대 여성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여성은 전날 오후 4시 35분경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5층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교수의 얼굴을 향해 흉기를 휘둘러 교수의 얼굴과 손 등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앞서 이 여성을 특수상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지만, 조사 결과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 여성은 집에서 쓰던 부엌칼을 쇼핑백에 넣어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세브란스병원 의사가 다른 병원으로 진료받으러 가는 것을 막아 화가 났다”는 취지로 말하는 등 횡설수설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 여성이 실제로 다른 병원 진료를 거부당했는지 등 진술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사건을 목격한 한 60대 여성은 “가해 여성이 ‘내가 이번에 봐준 거야’라고 소리치고, 이어 습격당한 교수가 피를 흘리며 뛰어나오는 걸 봤다”고 전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피의자는 예약 없이 찾아와 진료실에 들어가려던 다른 환자를 밀치고 들어갔다고 한다.
세브란스병원 측은 사건이 발생한 진료실을 포함한 모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비상벨이 있고, 층마다 보안요원이 최소 1, 2명 배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피습당한 교수가 비상벨을 누르자 이를 듣고 출동한 보안요원 등이 피의자를 제압했다. ‘임세원법’에 따르면 100병상 이상 병원 등은 경찰에 바로 신고되는 비상벨을 설치하고 보안 전담 인력을 1명 이상 둬야 한다.
그러나 ‘임세원법’ 시행 후에도 의료진을 상대로 한 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올해 보건의료노동자 4만5062명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폭행을 경험한 사람은 4752명(10.6%)이었다. 폭언을 경험했다는 의료진은 2만3538명(52.2%)에 달했다. 이은주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42)는 “환자가 보호자를 데리고 찾아와 ‘의료소송을 걸겠다’고 위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럴 땐 (보안직원 등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의료현장 안전대책을 전면 재점검하고 가해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협회는 “의료기관 내 흉기 반입과 폭력 행위를 사전 차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세브란스병원 소속 교수는 “진료실 내에서 위협이 생기면 도망갈 곳이 거의 없다”며 “병원 설계 단계부터 긴급 피신용 통로를 만들고, 위협 상황에서의 대응 매뉴얼 등을 의료진에게 공지해야 한다”고 했다.
고진영 기자 goreal@donga.com
김원길 인턴기자 경희대 사회학과 4학년 재학
김혜균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학과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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